조선 초기의 재상이었던 황희(黃喜)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
누각을 짓고 광통루(廣通樓)라 하였고 1434년에 중건되었는데,
정인지(鄭麟趾)가 이를 광한청허부(廣寒淸虛府)라 칭하면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.
그러나 이때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 버렸고,
현재의 건물은 1638년(인조 16)에 재건된 것이며,
장의국(張義國)이 누각 앞에 연못을 파고 오작교를 가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.
2019년 마무리 하는 여행 같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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